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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구례 걷기 좋은 길,
천 년의 역사 속으로 떠나는 구례의 길
지리산둘레길 예술인마을부터 화엄사 입구 남악사까지
최근 지리산 노고단 남쪽인 광의면 온당리 당동마을 일원의 남악사터를 발굴 조사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구례 예술인마을에 위치한 남악사터는 1908년 일제의 강압으로 폐사되기 전까지 지리산 남악제례가 열렸던 제례 공간입니다.
※ 글·사진 : 구례군 문화관광해설사 임세웅
촬영 장소 : 차 시배지를 지나 화엄사 방면
남악사터 ~ 감나무 농장
지난 16일 아내와 함께 남악사터부터 화엄사 입구 남악사까지 걸으며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지리산 남악제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지난 16일 아내와 함께 남악사터부터 화엄사 입구 남악사까지 걸으며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지리산 남악제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천왕봉,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세조 2년까지 노고단에서 지냈던 지리산 남악제는 1456년 현재의 광의면 온당리 당동마을에 제단을 세우고 제례를 지냈고 남악사터는 천 년의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발굴조사 중입니다.
신라시대에는 천왕봉,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세조 2년까지 노고단에서 지냈던 지리산 남악제는 1456년 현재의 광의면 온당리 당동마을에 제단을 세우고 제례를 지냈고 남악사터는 천 년의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발굴조사 중입니다.
지난 1992년 부분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후 중단되었으나 최근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번 발굴을 통해 제단과 제기, 축대 등을 발굴하고 분청사기와 명문기와 등 다수의 유물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남악사터로부터 약 7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지권인 수인을 한 불상과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로 구성된 석불입상이 있습니다. 이곳은 미륵골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불상은 화엄사 대웅전 비로자나불과 같은 지권인 수인을 하고 있으며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공양 보살상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과 마주하고 있는 공양상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대전리 석불입상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규모가 꽤 큰 감나무 농장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농장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농작물에 손대지 말라는 안내문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농장은 농장의 가운데로 지리산둘레길을 내어 주었고 감이 열리는 시기에는 떨어진 감을 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내어 주기도 합니다.
인심 좋은 감나무 농장 덕분에 봄에는 연둣빛 새순을, 여름에는 열매를 그리고 가을에는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전리 석불입상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규모가 꽤 큰 감나무 농장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농장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농작물에 손대지 말라는 안내문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농장은 농장의 가운데로 지리산둘레길을 내어 주었고 감이 열리는 시기에는 떨어진 감을 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내어 주기도 합니다.
인심 좋은 감나무 농장 덕분에 봄에는 연둣빛 새순을, 여름에는 열매를 그리고 가을에는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방광마을
인심 좋은 감나무 농장을 지나면 방광마을까지 임도와 숲길이 반복되는데 주위에 핀 꽃들과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힘찬 물소리 덕분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인심 좋은 감나무 농장을 지나면 방광마을까지 임도와 숲길이 반복되는데 주위에 핀 꽃들과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힘찬 물소리 덕분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숲길을 벗어나면 방광마을부터 수한마을까지는 작은 마을의 안 길을 걸으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 천은사 아래 광의면 방광마을은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빛을 내뿜는 마을’입니다. 어떤 이들은 판관들이 지내던 마을이란 뜻으로 판관을 팡괭이, 팡괭이 하고 불렀는데 그것이 굳어져서 ‘방광’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방광마을에는 눈여겨볼 만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마을 입구에 놓인 소원바위로 지리산 산신이 반달 모양의 참새미 마을 계곡에 반해 자주 놀러 왔는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낙네가 간절하게 자식을 기원하는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아낙네의 정성과 소망이 너무 애절하여 그에 감복하여 노고단 정상에서 가져다주었다는 바위입니다. 그 아낙네가 바위를 품고 소원을 빌어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입니다.
2005년에 주민들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져 이제는 마을을 수호하는 지킴이로 우뚝 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마을 한가운데 돌담과 담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아버지 감나무입니다. 소원바위에게 아들을 빌고 난 후 아들을 얻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심었다는 감나무라고 합니다. 현재는 마을 전체 감나무에게 수꽃을 제공해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나무입니다.
마지막은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나무로 마을 중앙에 있는 약 530년 된 2그루의 느티나무입니다. 당산나무 앞에는 제단이 있는데 마을에서는 지금도 지리산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위해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며 마을을 수호하는 상징입니다.
마지막은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나무로 마을 중앙에 있는 약 530년 된 2그루의 느티나무입니다. 당산나무 앞에는 제단이 있는데 마을에서는 지금도 지리산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위해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며 마을을 수호하는 상징입니다.
방광마을 들녘은 어느덧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전날 비가 내린 후 하늘이 맑게 개면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논물에 비쳐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냅니다.
방광마을 들녘은 어느덧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전날 비가 내린 후 하늘이 맑게 개면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논물에 비쳐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냅니다.
수한마을 ~ 소나무숲길
논길을 따라 마을 길을 걸으면 수한마을에 도착하는데 마을 입구에는 약 500년 된 당산나무가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이 당산나무는 잎이 일시에 피면 풍년이 들고, 2~3회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수한마을에는 현대사에 이름을 올리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나 보의 물을 사용하는 대가로 정부가 농민들에게 돈을 내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세금 아닌 세금인 ‘수세’입니다.
참다못한 수한마을 사람들은 ‘수세’를 곡식으로 대신 내겠다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런 움직임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갔고, 마침내 한반도의 모든 농민들이 한데 뭉쳐 ‘수세 철폐’의 목표를 달성하고야 말았다고 합니다.
이제 ‘수세’ 사건은 흘러간 물처럼 과거사가 되어 버렸지만 자연의 섭리를 지켜낸 수한마을 사람들의 정신은 아직도 이 마을에 벽화로 남아 있습니다.
아름답게 집을 가꾼 전 마을 이장님 댁을 지나 대나무 숲길을 들어서면 대숲에 숨어 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오릅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대나무가 춤을 추듯 흔들거립니다.
당촌마을 뒷산까지 임도길이 쭈욱 이어지고 당촌마을을 지나 숲길 구간에 들어서면 화엄사 입구 상가까지 소나무숲길이 쭈욱 이어집니다. 아마도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일 것입니다.
당촌마을 뒷산까지 임도길이 쭈욱 이어지고 당촌마을을 지나 숲길 구간에 들어서면 화엄사 입구 상가까지 소나무숲길이 쭈욱 이어집니다. 아마도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일 것입니다.
당촌마을 뒷산까지 임도길이 쭈욱 이어지고 당촌마을을 지나 숲길 구간에 들어서면 화엄사 입구 상가까지 소나무숲길이 쭈욱 이어집니다. 아마도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일 것입니다.
당촌마을 뒷산까지 임도길이 쭈욱 이어지고 당촌마을을 지나 숲길 구간에 들어서면 화엄사 입구 상가까지 소나무숲길이 쭈욱 이어집니다. 아마도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일 것입니다.
화엄사
화엄사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200여 미터를 걷다 보면 우측에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이곳은 구례 차 시배지인 장죽전입니다.
828년 흥덕왕 3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왔고 임금의 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이곳이 그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구례 차 시배지입니다. 구례 사람들이 ‘진대밥’이라 부르는 장죽전 부근에는 약 8,000평의 평지가 있으며 주변의 대나무밭 사이에 차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녹차를 생산하는 다른 지역의 인공적인 재배환경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적인 재배환경에서 자란 차 나무에서 찻잎을 따기 때문에 수확량이 많지 않습니다.
차 시배지를 지나 화엄사 방면으로 걷다 보면 시의 동산이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구례와 관련된 시들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녹차를 생산하는 다른 지역의 인공적인 재배환경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적인 재배환경에서 자란 차 나무에서 찻잎을 따기 때문에 수확량이 많지 않습니다.
차 시배지를 지나 화엄사 방면으로 걷다 보면 시의 동산이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구례와 관련된 시들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화엄사 일주문 건너편 다리를 건너면 남악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남악사는 해마다 곡우절을 즈음해 지리산 남악제례가 열리는 제례 공간입니다.
구례군민들은 광복 후 1969년 화엄사 이곳에 남악사를 건립하고 매년 곡우절을 즈음해 지리산 남악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여행정보
- 가장 작은 규모의 지자체인 구례군에서 가장 적은 인구의 구례 사람들이 매년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례가 바로 '지리산 남악제'입니다.
-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남악사터와 남악사를 탐방할 수 있는 이번 코스는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례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 키워드 : #구례 #구례걷기좋은길 #천년의역사속으로떠나는여행 #지리산둘레길 #남악사 #지리산남악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