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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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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면 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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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마산면은 대평, 갑동, 장동, 궁산, 우전, 용수, 황둔, 서촌, 상사, 하사, 광천, 가랑, 냉상, 냉하, 중마, 청천 등 16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방광면의 천변, 당촌의 각 일부와 토지면 용두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갑산, 황전, 사도, 광평, 냉천, 마산리로 개편 관장하였으며 마산 마을 이름을 그대로 면 이름으로 삼았다. 동쪽은 토지면, 서쪽은 구례읍과 광의면, 남쪽은 문척면, 북쪽은 광의면과 산동면에 접해있다.

위치

서쪽으로 서시천을 경계로 구례읍과 광의면이 접경 되었고, 남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문척면과, 북쪽으로는 노고단을 경계로 산동면과 접경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토지면과 접경하고 있다. 화엄계곡의 하류 화엄천 연변 서남쪽에 비교적 넓은 평야지가 펼쳐져 있다.

황전(黃田)마을 - 황전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273 243 516 184 1,415.3 78.8 17.8 1,312.6 6.1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마을이 언제 설촌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화엄사의 동구 마을이란 점을 감안할 때 적어도 고려 중엽 이후 조선조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마을로 추정된다. 마을의 규모가 켜짐에 따라 남단 용수동이 이어져 한 마을이 되고 서남쪽 구릉(丘陵), 동쪽(장궁 진입로 밑)에 있던 우전(牛田) 마을(밀양 박씨 4,5가구)이 1930년경 본동으로 이사해 옴으로써 우전(牛田) 마을이 폐촌되었다. 옛날부터 땅이 비옥하고 들의 곡식이 잘 여문다 하여 황둔(黃芚)이란 이름이 붙여진 듯하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황둔의 황(黃)자와 우전(牛田)의 전(田)자를 따서 법정리 명이 황전리(黃田里)가 되었다.

자생조직
  • 위친계 - 1946년 창시, 계원 40명.
문화유적
화엄사
황전리 12, 신라 진흥와 5년(백제 성왕 22년)-서기 54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대찰(大刹), 대한조계종 제 19교구 대본산이다(上권 문화재편 참조).
송강정(松岡亭)
마을 당산 옆, 1989년 7월 1일 재일교포 오진섭(吳珍燮) 성금으로 건립 하였다.
조탑
마을 당산 앞, 1991. 9 .10 이건, 지리산의 정기가 마을 밖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하는 뜻을 담고 있는 돌탑이며 배형국인 마을의 돛대를 상징하는 돛(솟대)을 세웠다.
보호수
지정번호 10-9-22. 마을의 느티나무 당산목으로서 수령 300년 이상 이며 수세가 좋고 원형으로 뻗어 있다.
보호수
지정번호 10-95-15. 마을의 느티나무 보호목, 수령 200년 이상.
보호수
지정번호 10-9-5-3-21. 마을 느티나무 보호수, 수령 190년 이상, 수관이 원형을 이루고 모양이 좋다.
민속놀이
정월 대보름
황전 마을에서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달집 태우기 행사가 유명하다. 마을 청년들이 주동이 되어 달집을 크게 지어놓고 주민 각자가 자기 가정이나 본인의 소원을 연에 새기거나 종이를 붙여서 달집 둘레에 빽빽이 걸어 두고 간단한 제례를 마친 다음 달이 뜨면 달집에 불을 붙여 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면 달집 둘레를 돈다. 이 때 옆 마당에서는 술과 음식을 충분히 마련해 놓고 서로 끼리끼리 권하면서 구경하고 즐긴다. 이 행사 때에는 광주나 서울 여러 방송국에서 촬영해 가기도 한다.
당산제
섣달 그믐날 밤에는 마을 당산제를 지낸다. 이 마을의 당산으 3당산인데 상봉 당산, 마을 중앙 당산, 그리고 마을 입구 아랫 당산 3곳에서 차례로 지낸다. 제관은 보름 전 마을 임시 개발위원회의에서 선정하되 이장 외에 독축과 간사 두명을 뽑고 당산 나무 둘레에 금줄을 매고 황토를 뿌려 놓는다. 제사 시간은 밤 11시뿌터 12시 사이에 상봉 제단, 아랫 당산, 중앙 당산 순으로 모신다. 상봉 당산은 솔봉(서촌 뒷산 봉우리) 밑에 있는 곳으로 옛날 이곳에 어느 고승이 꽂아 둔 소나무 가지가 자라서 몇 아름드리 소나무 정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솔봉 지점이 지형적으로 깃봉이 된다는 표시였다고 하며 이 소나무는 6.25전에 자연 고사되어 베어 없어졌고, 이 솔봉 아래쪽 바위 뒷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기타
주막
서촌 마을은 화엄사의 동구 마을일뿐 아니라 광의 방면으로의 길목이 된 관계로 예로부터 화엄사 노선 서편에 다섯 가구 정동의 주막들이 행각이나 노동자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주야 붐비었으나 1970년대 화엄사 시설지구로 개발되는 바람에 마을 전체가 뜯기어 정지가 되고 전역이 상가나 서비스업 시설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황둔 마을에 현재 슈퍼나 식당에서 옛날 주막을 대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정미소
정미소는 없었으나 4,5마력짜리 발동기를 가지고 황둔 마을은 물론 서촌, 화산동에 까지 기계를 해체한 채 지게로 운반해 가면서 정미를 하여 주었다. 때는 일정 중기(1930년경)부터 광복직후까지 존속하다 여순사건 때 폐업되고 말았으며, 그 후 1970년대 초에 마을 중앙지점에 비로소 현대식 정미소가 설치되어 운영되어 오다가 이 역시 1990년대에 폐업되었다.
물레방아, 디딜방아
물레방아는 두 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한 곳은 이 마을 윗 뜸 맨 윗골목에서 냇가(화엄천)로 나가 샘골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가 없어지고, 그 뒤 현재 광의면으로 넘어가는 때죽머리들 가운데(마산저수지 수로)도려변 바로 밑에 있었으나 이 역시 발동기 정미기 바람에 자연 문을 닫게 되어 건물 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디딜방아는 아래 위뜸에 각 한 군데씩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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