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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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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면 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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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마산면은 대평, 갑동, 장동, 궁산, 우전, 용수, 황둔, 서촌, 상사, 하사, 광천, 가랑, 냉상, 냉하, 중마, 청천 등 16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방광면의 천변, 당촌의 각 일부와 토지면 용두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갑산, 황전, 사도, 광평, 냉천, 마산리로 개편 관장하였으며 마산 마을 이름을 그대로 면 이름으로 삼았다. 동쪽은 토지면, 서쪽은 구례읍과 광의면, 남쪽은 문척면, 북쪽은 광의면과 산동면에 접해있다.

위치

서쪽으로 서시천을 경계로 구례읍과 광의면이 접경 되었고, 남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문척면과, 북쪽으로는 노고단을 경계로 산동면과 접경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토지면과 접경하고 있다. 화엄계곡의 하류 화엄천 연변 서남쪽에 비교적 넓은 평야지가 펼쳐져 있다.

상사(上沙)마을 - 사도리 -

기본현황

(2008. 12월 현재)

기본현황
인구(명) 주택(호) 경지면적(ha) 임야(ha) 기타
총인구 면적
108 124 232 79 0.70 0.08 0.16 0.30 0.16
마을형성 및 지명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사등촌부곡(沙等村部曲) 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천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승(僧) 도선(道詵)이 마을앞 강변에서 우연히 이인(異人)을 만나 세사(世事)를 두고 담론을 나눴는 바, 이인이 모래 위에 삼국도(三國圖)를 그려 삼국통일(三國統一)을 암시하자, 도선이 이를 깨닫고,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기여하게 된다. 모래위에 그림을 그렸다 하여 그 때부터 사둘(沙圖)이라 칭하였다. 고려 현종(顯宗) 11년 5월 지리산이 무너지고 1519년 이조 중종(中宗) 14년 구례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등 산사태로 인해 임씨(任氏)성의 마을이 쓸려내려간 것으로 추정하는 데 평전(平田)지역에 현재는 실존하지 않는 “서당골”, “방죽안” 이라는 이름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 후 해주 오씨가 남원으로부터 중종조 (1524)에 들어오고, 영천 이씨가 순천으로부터 1780년경에 이주해 와 집성촌을 이루었다. 1535년경 문척에서 봉성장씨가 들어와 아랫사둘(下沙)을 이루면서 윗사둘, 아랫사둘로 불려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사도리가 되었다.

자생조직
자생조직
명 칭 창립년도 인 원 목 적
상사 위친계 1995 51 애사시 상부상조
상사 노인회 1988 50 상호 친목도모
상사 청장년회 1973 25 상호친목도모와 자원봉사
상사 새마을부녀회 1977 21 상호친목도모와 자원봉사
산야초 동호회 2012 11 산행을 통한 심신단련
제빵동아리 2011 10 우리밀빵 만들기
문화유적
사도리 석불좌상
상은사(상곡사), 도지정문화재 133호, 마을 서쪽 상은사에 있으며 고려조 때 승 도선을 기려 세웠다 함. 1982년 석불재각을 건축하였다.
효자정려
마을 앞, 효자 오형진(吳馨眞)의 정려로 고종 30년(1893년)에 내려 1910년에 세웠다.
효자비
마을 앞, 이교문(李敎紋)의 비로 조선조 헌종 때의 영천임.
영모재(永慕齋)
마을 입구, 해주 오씨(오태수)의 제각으로 1857년에 세워졌다.
쌍산재(雙山齋)
마을 입구, 해주 오씨(오치희)의 서재.
당몰샘
마을 입구, 샘물이 좋기로 유명하여 명천(名泉)이라 하며 보존하고 있다.
옥산재(玉山齋)
상은사 입구, 행원당(行源堂)의 서재로 신미(辛未)년에 세웠다 한다.
민속놀이
  • 설, 정월 대보름과 8월 추석 등 전후에 농악을 울리며 줄다리기, 씨름, 널뛰기, 그네뛰기, 윷놀이를 많이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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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61-780-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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