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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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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제1호 축복받은 미래의 땅 지리산

지리산 공원

천왕봉(天王峰)

천왕봉(天王峰)
천왕봉은 지리산의 최고봉으로 해발 1,915m의 거봉이다.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 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천왕봉 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으며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는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장관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천왕봉 정상은 언제나 구름에 쌓여 있어 맑은 날을 보기가 어려워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예로부터 천왕봉의 거대한 바위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로 불리었는지 천왕봉 서쪽암벽(장터목방향)에“천주(天柱)”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노고단(老姑壇)

노고단(老姑壇)Nogodan Peak 2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북쪽으로 심원계곡 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큰 봉우리이다.

이 곳은 신라시대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수호신으로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사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사당인 남악사(南岳祠)를 세워 올렸는데 지금은 화엄사 앞으로 옮겨 구례 군민들이 해마다 곡우절을 기해 산신제를 올리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노고단은 고산지대로 노고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과 운해, 봄의 철쭉,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화 등 철따라 변하는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고 주위에는 종석대, 관음대, 집선대, 문수대, 청연대, 만복대 등 명승지가 둘러 서 있다. 그리고 성삼재를 넘는 관광도로가 개통된 후 한층 가까워진 노고단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반야봉(般若峰)

반야봉(般若峰)

해발 1,732m로 지리산 3대 주봉 중 하나인 반야봉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봉우리이다. 천왕봉과 노고단, 만복대 등 지리산의 중심에 있어 지리산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이면 무등산과 덕유산까지 보이고,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落照)는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이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 600m 거리에 있는 반야봉의 북봉은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이 상록 원시림 지대를 이루고있으며 반야봉 남쪽 중턱 경사진 고원은 철쭉군락지로 5월 하순경이면 붉은 철쭉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반야봉의 전설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여신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 또는 마고할미, 노고할미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으며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

차일봉(종석대)

노고단과 자매봉을 이루며 솟아 있는 차일봉은 그 모양이 마치 차일을 쳐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해발 1,356m이다. 차일봉은 우번대, 종석대, 관음대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는데 정상에 암봉이 솟아 있어 자연 전망대로서의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다.

피아골

피아골

“피아골”은 지리산의 관문인 노고단의 등너머 섬진강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깊이 빠져나간 큰 계곡이다.
피아골의 어원을 살펴보면 흔히 한국전쟁 직후 “피아골”이란 영화작품이 나왔던 탓으로 흔히들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동족상잔의 피를 많이 흘려 피아골이라 불리게 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정확한 어원은 옛날에 속세를 버리고 한적한 이곳 선경(仙境)을 찾은 선객(仙客)들이 이곳에 고대 오곡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이유로 자연히 피밭골이라 불리게 된 것이 그 후 점차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다.

임걸령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3.2km 거리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432m의 높은 산이지만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 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옛날에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의 본거지였다하여 임걸령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 샘터에서 피아골 쪽 암벽 밑에 막터가 있는데 이것을 ‘황(黃) 호랑이 막터’라고 부른다.

뱀사골

뱀사골이란 명칭의 유래는 뱀사골계곡 입구에 있는 석실 건너편에 배암사(背岩寺)란 절이 있었는데 배암사골이란 이름이 변해 뱀사골로 됐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배암사 역시 정유재란 당시 소실돼 버리고 지금은 이름만이 전해온다.
뱀사골은 유독히 용이나 뱀에 관련된 이름을 가진 명소가 많이 있는데 요룡대(搖龍臺)는 용이 머리를 흔들어 승천하는 모습을, 탁용소(濁龍沼)는 큰뱀이 탈피하여 용으로 변신하는 장소, 또 뱀소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던 곳을 뜻한다. 이밖에도 병(甁) 모양의 병소,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한 병풍소, 산신제를 올리던 곳이라는 뜻의 제승대, 소금장수가 소금가마니를 물 속에 빠뜨렸다는 간장소, 뱀사골 상류를 의미하는 들돌골(擧石谷) 등이 유명하다.

토끼봉

토끼봉은 1,537m로 정상이 밋밋한 초원지대와 구상나무 상록수림지대로 정연하게 구분이 되어 있어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처럼 우아하고 정돈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서쪽으로는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과 북쪽의 뱀사골, 동남쪽으로는 화개골의 경관을 볼 수 있다. 정상부 초원에 지보초(식용 산채류)가 군생하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화개골로 내려가면 칠불사에 이른다.

달궁(達宮)

마한, 진한, 변한의 부족국가사회를 이루고 있던 삼한시대에 부족간의 큰 전쟁이 일어났는데 마한군에 쫓기던 진한왕이 전쟁을 피해 문무백관과 궁녀들을 이끌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 임시 도성이 있던 자리를 ‘달궁’이라 이름지었는데 심원 달궁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적을 방어하기에 천혜의 요새였다.
진한왕은 달궁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밖의 영에 정장군을, 동쪽20리밖의 영마루에 황장군을, 남쪽 20리밖의 산령에는 성이 각기 다른 3명의 장군을, 북쪽 30리밖의 높은 산령에는 8명의 젊은 장군을 배치해 외적의 침공을 막아 냈다고 하여 각각 정령치, 황령재, 성삼재, 팔랑재 등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다만 지금 달궁이라는 이름만 전해 내려올 뿐 옛날의 궁성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연하천(煙霞泉)

해발 1,480m에 위치한 연하천은 명선봉의 북쪽 중간에 위치한 높은 고산지대로 숲속을 누비벼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다하여 연하천이라 불리게 되었다. 연하천에서 오른쪽으로 약 2km 지점의 삼각고지는 해발 1,470m의 돌출봉으로 이곳에서는 좌우로 탁트인 백무동 계곡과 화개골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좌측 북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영원재와 삼정산을 거쳐 실상사로 내려갈 수 있으며 삼각고지에서 다시 종주능선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길목 왼쪽 능선 위에 형제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언 듯 보기에 한개의 큰 석상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개의 석상이다.

형제바위의 전설

이 석상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를 하고 있을 때 이들에 반한 지리산 요정이 두 형제를 유혹하였으나 형제는 유혹을 물리치고 득도하였다. 그러나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지리산 요정의 유혹을 경계해 형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그대로 두개의 석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벽소령(劈宵嶺)

벽소령(劈宵嶺)

벽소령은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록한 고개로 고도가 가장 낮은 1,350m다. 벽소령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높고 푸른 산들이 겹겹이 쌓여 깊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 오히려 푸르스름해 보이기까지 하여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등반코스로서 그 중심부에 위치하며 화개에서 마천까지 38km의 지리산 중앙부,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횡단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선비샘

덕평봉 남쪽 상덕평 능선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를 선비샘이라 한다. 수량은 적으나 마르는 적이 없고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쉬어가기에도 좋다. 이 샘을 선비샘이라 부르는 데는 한 화전민의 서글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선비샘의 전설

옛날 덕평 마을에 이씨노인이 살고 있었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데다 몹시 추하게 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았는데 노인은 한번만이라도 남에게서 사람다운 대접, 선비 대접을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생전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비 대접을 무덤속에서나마 받게 되었다. 후일 동네사람들은 생전에 불우했던 이씨 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샘을 선비샘으로 부르게 되었다.

칠선봉(七仙峰) (七仙峰)

해발 1,576m의 칠선봉은 작은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위에 자리잡고 있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비경의 암봉들은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더해준다.

세석평전(細石平田)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세석평전이란 이름이 붙은 세석고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고원으로서 그 주위가 12km에 달한다. 최고봉인 촛대봉에서 서남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지는 세석평전은 상, 중, 하로 식물군락이 나뉘어진다. 상층은 황량한 초원지대로서 지보초, 좁쌀풀, 산새풀 등 여러 종류의 초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중간층은 철쭉이 집단 서식하는 관목지대이며, 하층은 구상나무와 굴참나무 등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루고 있어 등고선별 식물 생태 분포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음양수

세석평전에서 남쪽으로 약 2km 지점에는 평지에서 돌출한 큰 바위 밑에서 솟는 크고 맑은 두 줄기의 석간수가 합쳐 자연 석정을 이루고 있는 샘터가 있다. 애를 못 낳는 남녀가 이 음양수를 마시고 산신령께 치성 기원을 드리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옛날 이야기 때문에 지금도 이 음양수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터목

장터목
천왕봉의 자매봉인 제석봉의 남쪽능선 고갯마루를 장터목이라 부른다. 장터목은 1,650m로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 주민과 북쪽 기슭의 마천주민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 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터목 고개에서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제석봉에 이른다. 제석봉 정상은 한국전쟁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는데, 도벌꾼들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해 울창했던 수림은 사라지고 황량한 초원으로 변해 지금은 고사목만이 등산객을 반기고 있다. 제석봉을 넘어가면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이 있는데 이 문은 예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하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만복대(萬福臺)

만복대(萬福臺)
산동면 위안리와 남원시 경계에 위치한 만복 대는 멀리서 보면 헐벗은 산 같지만 지리산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로 가을철이면 봉우리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지리산 서북능에 위치한 1,433m의 봉우리로 남원시 산내면과 구례군 산동면에 걸쳐있다. 소백산의 큰 줄기가 남하하면서 운봉고원에 잠시 멈췄다가 다시 그 정기를 모아 크게 솟아 오른 것이 만복대로 지리산 시발 기봉(起峰)이며 노고단으로 이어진다.
정령치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6km 정도 오르면 만복대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능선이 잡목림으로 덮여있다. 산동면에 지리산 온천랜드가 들어서면서 온천과 연계한 등반지로 각광받고 있다.

왕시루봉

왕시루봉

왕시루봉은 정상부에 넓은 초원이 형성돼 있어 그 모양이 마치 두리두리한 큰 시루 같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산이 높고(해발 1,243m) 그 발 아래 섬진강 청류가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백운산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수려한 경관은 비길 데가 없다. 봄엔 철쭉이, 가을엔 정상부 초원이 온통 억새밭으로 변한다.

지리산녀와 지리산가

삼국시대 지리산에는 지리산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새벽이 되면 새들의 노래 소리와 함께 잠을 깼고 이슬을 받아서 세수를 했다. 지리산녀는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보다도 아름다운 숲속에서 씩씩한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기름을 사려고 마을에 내려간 사이 산 아래쪽에서 남자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백제왕 일행으로 사냥을 나섰다가 화살을 맞은 꽃사슴을 따라 지리산녀의 거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리산녀를 발견한 백제왕 일행은 지리산녀의 미모에 반해 궁궐로 따라 내려 갈 것을 권했지만 지리산녀의 반응은 완강했다.
대궐로 돌아온 백제왕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지리산녀를 찾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지리산녀는 이미 이사를 한 후였고, 백제왕은 마침내 병이 들고 몇날 며칠 지리산을 헤매던 신하들은 지리산녀를 찾아냈지만, 지리산녀의 반응은 싸늘했다. 결국 백제왕은 지리산녀를 죽이라고 명령했고 절개를 지키기 위해 끝내 죽음을 택한 지리산녀는 죽음에 앞서 지리산가를 남긴다. 아쉽게도 그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지리산녀가 불렀다는 지리산가에는 백제의 부전가요라고만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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